안녕하세요. 명절이나 제사를 앞두고 영양상담실을 찾는 환자분들의 얼굴에는 설렘보다 걱정이 가득합니다. "선생님, 오랜만에 일가친척 다 모이는데 저만 깨작깨작 먹고 있으면 분위기 망칠까 봐 걱정돼요. 그렇다고 전이랑 잡채를 마음 놓고 먹을 수도 없고... 차라리 안 가고 싶네요."라고 말씀하시는 그 고충, 충분히 이해합니다. 명절 음식은 신부전 환자에게 '나트륨, 칼륨, 인, 단백질'이라는 4대 복병이 모두 들어있는 종합 선물세트와 같으니까요. 하지만 즐거운 명절이 신장 건강을 해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오늘은 가족의 정도 나누면서 내 신장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명절 음식 대처 매뉴얼'을 아주 꼼꼼하게 짚어드리겠습니다.
전과 튀김의 유혹, '개수'를 정하고 '조리법'을 바꾸세요
명절의 꽃이라 불리는 각종 전과 튀김은 신부전 환자에게 가장 위험한 음식 중 하나입니다. 기름진 음식은 소화가 더디고 혈압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전 속에 들어가는 고기나 해산물은 단백질과 인 함량이 매우 높습니다. 제가 상담실에서 드리는 첫 번째 팁은 '미리 먹을 개수를 정해두기'입니다. 접시에 담긴 음식을 그냥 집어 먹다 보면 내가 얼마나 먹었는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식사 전, 미리 내 접시에 생선전 한 조각, 호박전 두 조각처럼 양을 딱 정해서 덜어내세요. "딱 이만큼이 내 신장이 감당할 수 있는 행복의 양이다"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음미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집에서 직접 명절 음식을 준비하신다면, 조리법에서부터 신장을 배려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호박전이나 버섯전을 할 때 소금 밑간을 아예 하지 마세요.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물을 입히는 것만으로도 재료 본연의 맛이 충분히 살아납니다. 또한 고기전보다는 두부전이나 채소전 위주로 준비하고, 조리 후에는 키친타월로 기름기를 최대한 제거해 주세요. 한 환자분은 제사 음식을 차릴 때 본인 몫의 나물은 따로 양념하기 전에 미리 덜어두어 물에 한 번 더 헹궈 드셨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하니까 가족들과 똑같은 나물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훨씬 편하더라고요."라는 환자분의 지혜가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특히 잡채는 신부전 환자에게 주의가 필요한 메뉴입니다. 당면 자체의 칼로리도 높지만, 함께 들어가는 시금치나 버섯 등에 칼륨이 많고 진한 간장 양념이 나트륨 폭탄이 되기 쉽습니다. 잡채를 드시고 싶다면 면 위주보다는 칼륨을 제거한(데친) 채소 위주로 조금만 섭취하세요. 명절 식탁은 풍성하지만, 그 풍성함 속에 내 신장을 위한 '절제의 미학'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젓가락을 들기 전 한 번 더 생각하는 그 짧은 시간이 여러분의 투병 생활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과일과 떡, 후식 속에 숨은 '칼륨과 인'의 반전
식사를 잘 마쳤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입니다. 진짜 복병은 식사 후 이어지는 과일과 떡, 식혜 같은 후식에 숨어 있습니다. 명절 단골 과일인 배와 사과는 칼륨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양 조절에 실패하면 문제가 됩니다. 특히 단감을 많이 드시는데, 감은 칼륨 수치가 높아 주의가 필요합니다. 과일은 얇게 썰어 한두 쪽만 맛보는 정도로 그치세요. "과일은 비타민이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신부전 식단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후식으로 나오는 떡은 주성분이 탄수화물이지만, 속재료로 들어가는 팥이나 콩, 견과류에는 인 함량이 매우 높습니다. 떡보다는 흰 쌀밥을 한 숟가락 더 드시는 것이 신장에는 훨씬 이롭습니다.
식혜나 수정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설탕 함량이 높아 혈당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수분 섭취량을 갑자기 늘려 부종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저는 환자분들에게 "명절 후식은 따뜻한 연한 보리차 한 잔으로 대신하세요"라고 권합니다. 따뜻한 차는 소화를 돕고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주며, 과한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가족들이 화기애애하게 과일을 깎을 때, 여러분은 정성껏 준비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대화에 집중해 보세요. 먹는 즐거움보다 더 큰 '함께하는 즐거움'이 여러분의 마음을 먼저 채워줄 것입니다.
한 환자분은 명절에 친척 집을 방문할 때 아예 본인 전용의 '저칼륨 후식'을 직접 준비해 가셨습니다. 칼륨을 뺀 오이나 당근 스틱을 예쁘게 통에 담아 가서 과일 대신 드셨죠. "처음엔 친척들이 이상하게 봤는데, 제 사정을 설명하니 나중엔 본인들도 건강 생각해서 같이 드시더라고요."라며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나의 건강을 지키는 행동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관리에 철저한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신뢰와 존경을 주는 행동임을 잊지 마세요.
"괜찮아, 조금은 먹어도 돼"라는 권유에 대처하는 현명한 대화법
명절에 환자분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음식이 아니라 주변의 '권유'일지도 모릅니다. "오랜만에 모였는데 딱 한 입만 먹어봐", "이거 몸에 좋은 거니까 괜찮아"라며 정을 건네는 가족들의 배려가 환자에게는 큰 부담이 됩니다. 여기서 마음이 약해져 한두 입씩 먹다 보면 결국 그날 식단은 무너지게 되죠. 저는 상담 시 '정중하지만 단호한 대화법'을 연습해 보라고 말씀드립니다.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신장 수치를 잘 관리해서 투석 없이 오래 건강하게 지내려고 노력 중이에요. 나중에 더 건강해졌을 때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진심을 담아 말씀해 보세요.
가족들은 여러분이 아픈 것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음식을 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왜 이 식단을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이 노력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가족들은 최고의 조력자가 됩니다. "이번 명절엔 제가 먹는 것 대신에 저랑 산책 한 번 같이 해주세요"라고 제안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음식으로 나누는 정보다 함께 걷고 대화하며 나누는 정이 신장 환자에게는 훨씬 건강하고 값진 선물입니다. 명절은 단순히 먹는 날이 아니라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날임을 기억하세요.
글을 마치며, 명절 후에는 반드시 평소보다 더 엄격한 식단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과했다 싶으면 다음 날 소변량과 체중을 체크하고, 병원 진료 시 명절 기간의 상태를 의료진과 공유하세요. 1월 2일 재신청을 준비하며 작성하는 이 글들이 명절이라는 고비를 앞둔 많은 환우분에게 든든한 방패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절제와 노력은 헛되지 않습니다. 그 인내의 시간이 모여 여러분의 신장을 살리고 일상을 지켜낼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신부전 환자들의 영원한 숙제, '가려움증과 피부 관리, 요독을 다스리는 생활 습관'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